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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나비 :: 꽃다 자체 2회차

* 처음부터 끝까지 다 스포!


- "이렇게나 다르구나" 어떤 의미에서? 꽃다송과 꽃송이. 그리고 (꽃다회차의) 초반과 후반이. 5/8에 꽃다송으로 첫 관극을 했는데 그때랑 참 느낌이 달랐다. 그땐 꽃다송-꽃송의 노선 자체는 비슷한데 꽃다송 쪽이 꽃송보다 스파이로써 그리고 배우로써 (여기서 배우로써라고 하는 건 꽃다와 꽃이라는 자연인으로써의 배우들 이야기가 아니라 경극 배우였던 송 이야기다) 더 프로페셔널하고 더 도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꽃다는 이용노선, 꽃은 사랑노선이라고 하는데 사실 난 보고 난 뒤에 둘 다 결국 르네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8일과는 전혀 다른 극이었다. 그리고 노선은 완벽하게 분화되어서 극 진행과 대사만 같았지 담고 있는 그 내용물은 천지차이였다.

- 오늘 본 꽃다송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난 자기애에 넘치는 송을 본 것 같다. 나르시즘이라고 표현하면 맞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타인의 무시나 경멸 따위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듯한 그런 송. 꽃송이 친 동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배우로써의 자의식에 빠지더라도 바로 현실로 돌아와 친 동지의 눈치를 보곤 한다면 꽃다송은 더 도도하고 당당하다. 이는 르네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초반에 서양과 동양의 권력관계를 논할 때 보이던 도도함을 꽃송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르네의 환상 속 동양 여인을 연기하지만, 꽃다송은 이 도도함을 '저는 천생 동양 여자예요'라고 순종적인 버터플라이로써의 자신을 고백할 때 마저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르네의 비위를 맞추고 그가 원하는 마담 버터플라이를 연기할 때에도 꽃다송은 르네가 아닌 자신의 임무, 자신의 연기, 아니 그 전에 거슬러 올라가 자기 자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3막에서 정체가 드러나고 르네와 대치하게 될 때, 꽃다송은 훨씬 박력 있고 위압적이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르네에게 자신이라는 진실을 강요하는 듯도 하다.(르네를 비웃는다는 평이 많았는데, 사실 내게는 그런 식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런 자기애와 도도함이 합쳐져 이 대사가 굉장히 와 닿았다. "날 숭배해 주세요" 이 대사는 꽃송회차로 봤을때 "날 사랑해 주세요" 라고 들렸는데, 꽃다송에서는 이 그대로 들렸다. 그래, 숭배받아야 할 존재였던 송 릴링.

- 손동작 디테일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밑에서 르네가 마담 버터플라이 연기를 하고 위에서는 송이 연기를 하는 장면에서 꽃다송의 동작이 좀 더 설명적이고 자세하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마담 버터플라이라는 느낌. 손이 춤추듯 움직이며 정말 오페라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이건 실제 둘이 만나는 나비부인 오페라 장면에서도 마찬가지!) 꽃송은 르네와 거의 틀림 없이 같은 동작이라서 르네와 송(혹은 나비부인?)의 동일시라는 측면이 더 강하게 느껴졌는데, 꽃다는 르네가 꿈꾸는 오페라 속의 나비부인이라는 게 확 와닿았다고 해야 하나.

- 충직한 하인 스즈끼가 '아가씨가 그 서양 건달과 결혼한 것도 다 용서하겠대요' 라는 대사를 치는데... 이거 '놀아난 것도' 아니었나? 꽃다/꽃송 회차가 다 다른가? 궁금하다!

- 3막에서 둘이 대치하고 송이 르네에게 자기 본모습을 꿰뚫어 보라고 덤벼들 때 르네에게, "거짓된 자존심은 버리고!" 라고 말한다. 이 대사 꽃송회차에는 없었던 것 같다.(앗,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거짓된...' 정도밖에 대사를 안 친다고.) 초반 "당신은 내 버터플라이요?"라고 송을 다그쳤던 르네가 했던 말 ('거짓된 자존심은 버리고') 이 다시 여기에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구나. 핑커튼의 입장에서 버터플라이인 송을 품었던 르네가, 3막에 오면 사실 자신이 버터플라이고 자신을 이용했던, 거짓된 모습으로 현혹했던 이는 송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3막은 거울상처럼 2막을 고스란히 반대로 비추어 보여 주는데.... 그런 것들이 이 대사로 확 와닿았다. 응 이 대사 많이 좋았다....



Posted by 눈꽃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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